남창공(南窓公) 현성(玄成)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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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명 | 남창공(南窓公) 현성(玄成)파 | 호 | 남창(南窓) |
파조 | 현성(玄成) | 자 | 여경(餘慶) |
세수 |
| 시대 | 조선 |
정보 | 삼현파 관(管)의 종손인 군수공 건(健)의 현손이시다 |
남창공(南窓公) 현성(玄成)파
조선의 문인. 자(字)는 여경(餘慶), 호(號)는 남창(南窓), 목사(牧使) 언유(彦諭)의 아들. 1561년(명종16)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64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교서관 정자(校書館正字)를 거쳐 봉상시 주부(奉常寺主簿). 양주 목사(楊州牧使)·사재감정(司宰監正) 등을 역임. 1617년(광해군 9)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때 왕명으로 평양(平壤) 기자비(箕子碑)의 비문을 베껴 가지고 돌아와 마침 벌어진 페모론(廢母論)의 정청(庭請)에 불참하여 면직, 청빈하게 여생을 마쳤다. 시(詩)·서(書)에 뛰어났고, 필법(筆法)은 송설체(松雪體)를 따랐으며 그림에도 능했다.
파중시조는 증우의정 동돈녕 남창공 현성이시다. 목사(牧使) 언겸(彦謙)의 아드님이시며 판도판서 관(管)의 종손인 군수공 건(健)의 현손이시다. 선무원종공신이시고 청백리이시며 광해군때 으뜸의 명필이시다. 벼슬은 돈돈녕에 이르셨고 인조때 우의정에 추증되셨다.
후손이 대구 달성 영천 하양에서 거주하고 있다.
중종 37년에 출생하시어 광해군 13년에 작고 하셨다.
목사(牧使) 언겸(彦謙)의 아드님이시며 판도판서 관(管)의 종손인 군수공 건(健)의 현손이시다.
자는 여경(餘慶), 호는 남창이시다.
명종 19년 문과에 탁제(擢第)하시고 벼슬은 동지돈녕부사에 이르시고 우의정에 추증되셨다.
효우(孝友)하시고 효성이 지극하시며 글을 좋아하셨다.
오만한 태도가 전혀 없으셨다 한다.
시를 잘 지으시어 많은 시를 남기셨고 문집으로는 남창문집과 남창잡고가 있다.
다음의 시가 전한다.
世路多風浪 孤臣進退憂
洛江春水 歸可理漁舟
「대동야승」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남창은 경학에 고명하여 후진들을 가르쳐 명인을 많이 내었다.
지조를 몹시 바르게 지켜서 폐후(인현왕후)의 정청(庭請)에 한번도 나가 참석하지 않았다.
이때문에 수년간 버림을 받았는데 문을 닫고 손님을 사절, 서사(書史)를 가지고 즐겼다. 그가 돌아가니 두어칸 초옥에 책 한상자와 조복 몇벌뿐이었다.
그 맑게 닦은 것과 곧은 절개는 옛사람에 부끄러움이 없는데도 지위가 그 덕에 충족하지 못하였으니 애석한 일이다."
남창공(南窓公) 현성(玄成)파라는 한 파조를 이루며 묘는 경기도 고양군 화장동에 있으며 비명(碑銘)은 지붕 이수광이 지었다.
남창공(南窓公) 현성(玄成)파 항렬표 | 시조로부터세수/파조로부터세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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