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걸(金富傑)
페이지 정보
본문
이름 | 김부걸(金富傑) | 호 | |
파명 | 자 | ||
관직 | 시대 | 조선 | |
정보 |
김부걸(金富傑)
김해인 결성에 거주(居住)하던 김해인 김부걸은 가정(家庭)이 극빈(極貧)하여 나무를 해다가 연명(延命)을 하면서도 부모(父母)를 극진(極盡)히 봉양(奉養)하였다. 친상(親喪)을 당하여 3년 동안을 상복(喪服)을 벗지 않고 주육(酒肉)을 금하고 시묘(侍墓)를 하였다. 이러한 사실(事實)을 도내(道內) 유림(儒林)대표(代表) 이승헌이 거동하는 고종(高宗)의 어가(御駕)앞에서 이 사실(事實)을 복주(伏奏)하였다. 계미(癸未)년 9월 21일 좌부승지 홍승헌이 왕명(王命)을 받들어 예조(禮曹)로 하여금 정려(旌閭)를 세우게 하였고, 충청(忠淸)관찰사(觀察使) 순장(巡將)의 벼슬을 제수(除授)하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