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광(金三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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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광(金三光) 삼광(三光)은 신라 무열왕 2년(655년) 김유신과 지소(智炤)부인 사이에서 5남4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삼광은 10세가 갓넘은 666년(문무왕6년) 내마(신라 17관등 중 11번째 위계) 한림을 수행원으로 하여 3년간 입당숙위(入唐宿衛)하였다. 숙위란 당나라 주변 국가의 왕자들이 당의 조정에 머물면서 황실의 권위를 높여주는 의장대였으나, 사실은 인질적인 요소를 지닌 대당 외교사절이었다. 이들이 후일 삼국통일의 외교적, 군사적 관문을 열어주어 통일 과정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숙위는 원칙적으로 김씨 왕족에 한하여 그들의 독점적인 지위를 고수했으나, 나중에 김씨를 포함하여 김유신계, 박씨계 등에도 자격이 개방되엇다. 삼광은 3대 숙위로서 당에서 받은 관직은 좌무위익부중랑장(左武衛翊府中郞將) 이었다. 1대와 2대 숙위는 무열왕의 아들 문무왕과 그의 동생 김인문(金仁問)이었다. 그런데 이들 3인이 실제로 당의 관직을 담당하고 백제, 고구려 정벌시에는 장군이 되어 삼국통일에 주도적 역할을 다했으며 국내정치 제1선에서 왕성한 정치적 업적을 남긴바 있었다. 이러한 무장으로서 숙위의 주임무는 백제, 고구려 정벌의 청병사(請兵使)였다. 2대 숙위였던 김인문은 직접 당 고종에게 원병을 요구하여 백제정벌을 가능케 하였다. 김삼광 역시 고구려 정벌의 청병사로서 소임을 다했을 뿐 아니라 당시의 전략을 본국에 보고하여 실전을 독려하고 그 전술을 이끌고 나갔다. 668년 고구려 정벌 당시 삼광은 당나라 장수 유인궤를 대동하고 당항진(경기도 안산)으로 귀국하였다. 문무왕은 김인문을 영접사로 파견하여 이들을 맞이했다. 당시 삼광은 와병중인 김유신을 대신하여 신라군을 이끈 김흠순,김인문등과 함께 고구려를 정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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