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견(金石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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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석견(金石堅) | 호 | 문옹(汶翁) |
파명 | 자 | 자고(子固) | |
관직 | 병조참의 | 시대 | 조선 |
정보 | 임진왜란 충신·공신 |
김석견(金石堅)
자는 자고(子固), 호는 문옹(汶翁). 이낙재(二樂齋). 천관거사(川觀居士).
가정24년 3월 7일생. 부친상에 여묘 3년하였다.
임진란때 5월 1일 세아들 몽수(夢秀), 몽량(夢良), 몽남(夢男)과 함께 창의, 1백여인을 모았고 몽량에게 집에 남도록 명한 다음 부병(府兵)과 합세하여 명활산(明活山) 아래에서 수천명의 적을 습격, 몽남이 그 적장을 죽였다. 9월에 류포(柳浦)에서 적을 습격하여 수천명을 죽였고 몽남이 그 적장을 죽였다. 10월에 열박산과 휴항( 項)사이에서 복병 하였다가 적을 공격하여 대파하였다.
만력 22년 8월 몽수가 무과에 급제하였다. 만력 24년 매와(梅窩)와 합세하여 동화산(棟華山)아래에서 4백여명을 살해하고 총 50여개를 노획하였다. 11월 몽량이 장사 30여인과 함께 군량을 싣고 가다가 적에게 살해되었다. 만력 25년 1월 영천의 창암(倉岩)에서 문옹(김석견)이 부상을 당했다. 7월에 작산(鵲山)에서 3백여명을 매복시켰다가 적을 공격, 30여명을 살해하였다.
만력 26년 7월 왜병이 철수하고 12월 명나라군사가 철병하니 이듬해 1월에 의병을 해체하였다. 3월에 무과에 올랐고 4월에 아들 몽수 몽남과 함께 원종3등훈에 기록되었으며 몽수에게 고부현감이 제수 되었으나 부임치 않았다. 만력 28년 선전관, 만력 29년 훈련원 주부, 만력 31년 훈련원 판관, 만력 32년 훈련원정에 제수 되었으나 취임치 않았다. 만력 42년 69세로 두산별장에서 별세하였다. 병조참의에 추증, 두산사에 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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