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경(金善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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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선경(金善慶) | 호 | 돈재(돈齎) |
파명 | 삼현파 후손 | 자 | 적여(積餘) |
관직 | 시대 | 조선 | |
정보 |
김선경(金善慶)
선생의 휘는 선경(善慶)이요. 자는 적여(積餘)이며 호는 돈재 (돈齎)로 탁영 김일손(濯纓 金 馹孫)선생의 현손이고 도연정 김 치삼(道淵亭 金 致三)선생의 아들로 한강 정 구(寒岡 鄭 逑)선생의 문인이다.
선생은 1586년(선조 19년)에 출생하였고 음직 (陰職)으로 통례원 좌통례 (通禮院 左通禮)를 제주하고 향년 53에 졸 하였다. (참고문헌 :가락세적, 탁영집, 청도문헌고, 도주지, 도주문화)
휘는 선경이고, 자는 적여이다. 선조19년(서기 1586)에 생하시어 음직으로 통례원좌통례를 배수하였다.성품이 온순하였으며 공경을 다하여 가정궤범을 닦으니, 위로는 선조의 정열을 계승하고 아래로는 자손에게 교훈을 내려 주었다. 그러므로 옛가문의 성적을 발전시키었으며, 도의를 보위하고 학문을 연구하여 사문에 공헌한 바가 있으므로 당세에서 추중을 받았다. 인조16년(서기 1638) 1월 27에 졸하시니 향년 53세로ㅡ 묘소는 유천관 뒷산 경좌의 언덕이다. 배위는 포산곽씨로 생원 경흥의 따님으로 공과 합폄하였다.슬하에 5형제를 두었으니 장자 집은 봉사 영몽의 따님 평산신씨에게 장가들고, 차자 흡은 증 호조좌랑으로 영일정씨에게 장가들었으며, 삼자 낙은 현풍곽씨에게 장가들었다. 사자 약은 선고의 유훈으로 다시 남원에 거주하면서 휘 대장공과 휘 장공 등 두 선영을 수호하였으며 통덕량 업의 따님이신 경주이씨에게 장가들었고, 오자 양은 수문장 재후의 따님이신 탐진안씨에게 장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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