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광(金秀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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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수광(金秀光) | 호 | 황성헌(喚惺軒) |
파명 | 판서공 불비의 아들 | 자 | 천장(天章) |
관직 | 시대 | 조선 | |
정보 |
김수광(金秀光)
김해인 자(字)는 천장(天章), 호(號)를 황성헌(喚惺軒)이라 하니 본관(本貫)은 김해(金海)이며 판서(判書) 불비(不比)의 아들이다.
일찌기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문하(門下)에 수학(受學)하니 학문(學問)과 언행(言行)이 정대(正大)하여 선비의 도리(道理)에 한치 벗어남이 없었다. 세종(世宗) 32년 (1450년) 약관(弱冠)으로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고, 이어서 벼슬에 오르니 세조(世祖) 8년(1462년) 경상도사(慶尙都事)를 거쳐 양사헌납(兩司獻納) 봉상시정(奉常寺正)을 역임(歷任)하고 연산군(燕山君)의 폭정(暴政)으로 관직(官職)을 떠났다. 뒷날에 그는 다시 한림원태학사(翰林院太學士)로 조정(朝廷)이 불렀으나 나가지 아니하고 향리(鄕里)에서 금서(琴書)를 벗하며 지내다가 여생(餘生)을 마치니 그의 묘(墓)가 지금의 동면(東面) 금산리(琴山里) 금동부락 뒷산에 남아 있으며, 한항당(寒恒堂) 김굉필(金宏弼)이 묘지(墓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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