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견(金永堅)
페이지 정보
본문
이름 | 김영견(金永堅) | 호 | |
파명 | 자 | ||
관직 | 시대 | 조선 | |
정보 | 조선 전기의 문신 |
김영견(金永堅)
생몰년 미상.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金海). 증호조판서 진손(震孫)의 아들이며, 대사헌 영정(永貞)의 형이다.
1454년(단종 2) 수의(修義)로서 별시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였고, 1457년(세조 3) 대교(待敎)로서 문과중시에 정과에 다시 급제하였다.
1455년 기사관 행예문 관검열로 《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고, 세조즉위시에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책봉되었다.
1471년(성종 2) 전통례원상례(前通禮院相禮)로서 전라도에 파견되어 여러 읍의 실농(失農)을 살펴 흉년을 구제하고 도둑들의 유무와 농민들의 질병을 보살폈다.
또, 경차관으로 나아가 농민 가운데 배고파 죽는 자, 종기가 난 자, 떠돌아다니는 자, 굶주리는 자가 있으면 수령을 죄줄 것을 청하였다. 같은해 사간이 되었고 편수관이 되어 《세조실록》 편찬에 참여, 향표리 1습이 하사되었다.
1472∼1473년 사간·시강관을 역임하고 이듬해 우부승지가 되어 여러 역사서들을 인쇄, 반포하라는 명을 받았다.
1475년 좌부승지가 되었는데 어머니의 병으로 사직할 뜻을 아뢰었으나 도리어 계급이 승진되어 이조참판에 임명되었다.
1478년 행첨지중추부사가 되었고 이어 동지중추부사로 전(箋)을 받들어 북경(北京)에 가서 천추절을 축하하고 왔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