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수(金應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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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응수(金應壽) | 호 | |
파명 | 밀직사공 창문파 후손 | 자 | 승문(承門) |
관직 | 시대 | 조선 | |
정보 | 임진왜란 충신·공신 |
김응수(金應壽)
선생은 1536년 (중종 31년)에 태어나고 호는 서친(西川 )이며 호군 낙안당 김세중(護軍 樂安堂 金 世仲)선생의 아들로 본관은 김해 (金海)이다.
1592년 (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이 물밀듯이 처들어와 도처에서 관군이 패하여 불과 한달만에 서울이 함락 되었다. 당시 선생은 사복시 (司儀寺 )에 출사하고 있었는데 서울이 함락기기 직전 선조대왕 (宣根大王) 이 서울을 버리고 평양(平壤)으로 서천할 때 임금을 효종하여 의주(義州)에 까지 갔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논공행상때 호성삼등공신(扈聲三等功臣)에 오르고 분성군(盆城君)으로 책봉된 충절의 선비 이었다. (참고문헌 :인명대사전, 국사대사전, 족보)
김응수(金應壽)
밀직사공(密直司公) 휘 창문(昌門)의 7세손이시고, 낙안공(樂安公) 휘 세중(世仲)의 넷째 아드님이시며 호는 서천(西川)이다.
임진왜란때 공신이시다.(낙안당김공묘비명. 밀직사공 창문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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