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금(金係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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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계금(金係錦) | 호 | 육일(六一) |
파명 | 자 | ||
관직 | 시대 | 조선 | |
정보 | 조선 초기의 문신 |
김계금(金係錦)
생몰년 미상. 조선 초기의 문신. 본관은 김해. 일명 계면(係綿). 호는 육일(六一)·서강(西岡). 아버지는 효분(孝芬)이다.
1445년(세종 27)에 생원이 되고, 1454년(단종 2)에 증광문과에 정과로 급제하여 지평(持平)·의성현령을 지냈다.
1455년(세조 1) 권지학유(權知學諭)가 되었으나, 이듬해 사육신사건으로 많은 인물들이 화를 당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였다.
1463년 겸지평으로 호패(號牌)의 규검(糾檢)을 위해 지방을 순행하도록 발탁되었다. 집현전권지학유를 지내 문장과 행의로 이름이 있었으며, 죽은 뒤 사림에서 사당을 건립하여 제향하였다.
저서로는 《장릉사보 莊陵史補》·《강의제현록 講義諸賢錄》·《무오유현록 戊午遺賢錄》·《서강일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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