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섭(金興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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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흥섭(金興燮) 본명 : 흥관(興寬) | 호 | 영암(榮菴) |
파명 | 자 | ||
관직 | 시대 | 조선 | |
정보 | 동학농민운동 |
김흥섭 金興燮 [1874~1965]
활동분야 : 동학농민운동
출생지 : 전북 고창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영암(榮菴), 본명은 흥관(興寬)으로, 1874년(고종 11) 전라북도 고창(高敞)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김성칠(金聲七)과 함께 동학(東學)에 가담해 활동하였는데, 특히 1893년 12월 아버지가 전봉준(全琫準)·손화중(孫化仲)·정백현(鄭白賢) 등과 함께 송문수(宋文洙)의 집에서 기포에 관한 모의를 한 뒤, 이듬해 3월 제1차 동학농민운동을 일으키자 이때부터 농민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는 1차 기포 때 공음면(孔音面)에서 기포한 뒤, 그해 9월 다시 농민운동을 일으킬 때까지 전봉준의 진중(陣中) 수행원으로 활약하면서 백산전투(白山戰鬪)를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짐작되지만, 정확한 사료가 소실되거나 분실되어 확인되지 않는다.
이후 농민운동이 좌절되자 지금의 부안군(扶安郡) 변산면(邊山面)으로 도피했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서당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이었는데, 문필에도 뛰어나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다고 하나 전해지는 것은 없다. 1965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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