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련(金悳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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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김덕련(金悳鍊) | 호 | 고헌(顧軒) |
파명 | 자 | 건칠(建七) | |
관직 | 시대 | 근대 | |
정보 |
김덕련(金悳鍊)
1869(고종 6)∼1929. 한말의 학자. 본관은 김해. 자는 건칠(建七), 호는 고헌(顧軒).
경주 산내면 내칠리(內漆里)에서 출생. 아버지는 우간(瑀#간08)이며, 어머니는 경주김씨로 서증(西曾)의 딸이다.
1880년에 그의 아버지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봉화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조현익(趙顯翼)으로부터 배웠다. 공령(功令: 科文)을 멀리하고 오직 성현의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902년에는 부모를 모시고 다시 경주 옛 고장으로 돌아와 신계리(薪溪里)에 살면서 괘릉리(掛陵里)의 이능오(李能吾) 등과 교유하며 경의(經義)를 강론하였다. 몽양재(蒙養齋)에서 문중 자제들을 교육하고 몽양재학칙 19조를 만들어 준수하도록 지도했으며, 주일무적(主一無適)의 사상을 강의하였다.
또한, 선세(先 世)의 유문을 수습, 정리하였고, 《심경》과 《근사록》을 탐독하였으며, 이황(李滉)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조*ㅊ아 심(心)과 성(性), 즉 이(理)와 기(氣)는 선동후동(先動後動)이니 선생후생(先生後生)이니 하여 이원론으로 나누어 이해하기보다는 심즉성(心卽性)으로 보아 성명(性命)·이기(理氣)·체용(體用)·동정(動靜)이 원래 하나라는 심성일치, 즉 일원론을 주장하였다.
저서로는 《퇴서유집 退書類輯》 4책, 《길흉서류 吉凶書類》, 《사칠이기변》, 《동사 東史》, 《서악지 西岳志》 4권, 〈천자가 千字歌〉 1편, 《고헌집》 6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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